탐스럽게 열린 얼룩이 호박
타지에서 라스베이거스로 이주하면 일단 집값이 비싸지 않기 때문에 큰 도시보다는 넉넉한 주거 환경에서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점이 무더운 베가스에서 사는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중년의 주부들에게 있어서 마당이 있는 집에서 꿈꾸는 로망은 비슷할 지도 모른다. 텃밭 가꾸기! 그게 과연 베가스에서 될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의외로 텃밭을 잘 일구는 사람들도 꽤 있다. 작물이 타들어가는 여름을 잘 나게 하려면 더 많은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집에서 채소를 잘 가꾸는 한 사람을 만났다. 커다란 호박이 주렁주렁 열린 텃밭이 너무도 탐스러웠다. LA 인근에서 이주해 온 유니스 홍씨는 텃밭 가꾸는 시간에 푹 빠져 있다. 8년 이상을 채소로 마당을 가꿔왔다. “나무로 틀을 짜서 미니 텃밭을 만들었어요. 거기에 호박 씨를 심고, 남편이 손수 기둥을 설치해 줬죠. 호박이 잘 자라서 기둥을 타고 큰 덩굴을 이루었어요. 4~50개 정도는 수확을 합니다. 어찌나 쑥쑥 자라는지 하루만 늦게 따도 수박만큼 큰답니다.” 유니스씨의 호박에 대한 자부심이 물씬 느껴졌다.
그녀의 마당에는 청무, 시금치, 얼갈이 배추, 치커리, 갓, 쪽파, 상추 등이 가득하다. 특이한 것은 마당에 수영장이 있어서 대부분 큰 화분에 심은 것. 화분에서 자라는 채소로 1년의 먹거리를 삼는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렇게 잘 자라는 비결을 물었다. “씨를 심는 과정부터 정성을 들여요. 3월 중순쯤에 씨를 모판에 심어서 거실에 두고, 3~4일이 되면 싹이 나죠. 보온을 위해 작은 전기장판 위에 화분을 올려 놓고 플라스틱이나 비닐로 씌워 둡니다. 습도 조절을 위해 가습기도 틀어 놓아요. 그러면 발아가 잘 됩니다.” 유니스씨의 노력이 대단하다.
한 여름의 베가스 태양은 워낙 뜨거워서 화초를 햇빛에 그냥 놔두면 다 타죽게 된다. 그래서 그녀는 달리에 큰 화분들을 얹어서 그늘을 찾아 하루에도 몇 번씩 옮겨놓는다고 한다. 한여름에도 햇빛만 잘 가려주면 계속 수확이 가능하다. 그녀의 또다른 노하우는 ‘거름’에 있다. “옆집에 큰 나무가 있는데, 그 잎들이 저희 집 마당으로 다 떨어져요. 처음엔 청소하기도 힘들었는데, 남편이 그 나뭇잎들을 모아서 코스트코에서 사온 거름을 섞어줍니다. 그걸 겨우 내내 썩혀두었다가 봄에 텃밭에 뿌려주죠. 그러면 아주 잘 자라요.”
1)큰 화분에서도 잘 자라는 치커리, 쪽파, 얼갈이 배추, 상추 2)모판에 씨를 심고 습도와 온도를 맞춰주는 과정
3)가장 키우기 힘든 고추가 주렁주렁 열렸다. 4)모종을 화분에 옮겨 심는 과정
물 주는 일도 바쁘다. 매일 아침 6시에 텃밭에 물을 준다. 여름에는 오전과 오후에 두 번 주고, 여름이 지나면 한 번만 줘도 된다. 겨울에도 춥지 않기 때문에 텃밭의 채소들은 거의 1년 내내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녀는 “이웃들에게 모종을 자주 나눠줍니다. 그런데 살리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안타깝죠. 특히 고추 농사가 쉽지 않아요. 화분에서 작물을 키우더라도 정성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귀뜸했다.
유니스씨의 경험에 따르면 잘 되는 작물들이 있다고 전한다. “보통 사용하는 길쭉한 애호박보다 얼룩이 호박이 잘 자랍니다. 80% 이상이 쑥쑥 자라고 여름도 잘 견디죠. 오이는 조선 오이보다 가시 오이가 훨씬 잘 됩니다.”
1년 내내 채소 사러 마켓에 갈 일이 없다는 유니스씨. 베가스에서 그렇게 어렵다는 텃밭의 로망을 근사하게 실현하고 있다. 그녀는 “소소하게 채소 가꾸는 일이 매거진에 나갈 만큼 큰 일도 아닌데, 부끄럽네요.” 겸손하게 말하면서도 텃밭에 대해 설명할 때는 목소리에 힘이 있다. 작은 채소라 할지라도 생명을 잘 가꿔내는 일은 소소하다고 할 수 없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노력을 기울일 정성을 품고 있고, 수확한 작물로 가족과 이웃을 위해 한 끼라도 잘 차려내려는 넉넉한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수 년간 텃밭을 가지신 분들을 취재하면서 문득 들던 생각은 ‘금손’은 따로 있다는 것. 정성과 사랑을 가진 금손이 있어야만 그 안에서 생명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다는 공식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소박한 가을 날 유니스씨 텃밭을 통해 다시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글_ 제이스 이(Jace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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