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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가스 여행] 제이스의 Road Trip - 대륙 횡단기 "돌아올 때… 다시 떠날 시간을 꿈꾼다"

두터운 먹구름 사이를 뚫고 비행기가 착륙했다. 1년 만에 보는 듯한 굵은 빗줄기가 낯선 방문객을 반겨주었다. 미국의 동북부 온타리오 호수에 닿아 있는 작은 도시 ‘시러큐스’(Syracuse). 물의 도시라고 부를 만큼 눈과 비가 1년 내내 내리는 곳이라, 느낌은 딱 회색빛이다. 여기서부터 대장정의 대륙 횡단을 할 작정이었다. 거창하게 말하기는 좀 그렇고 집으로 돌아가는 로드 트립 정도라고나 할까. ‘강남 스타일’이란 작은 창고 같은 한식집에서 감자탕 한 그릇 두둑히 비워내고, 길 건너 작은 카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주문한다. 아무리 둘러봐도 동양인은 없다. 거친 질감의 나무 프레임 안으로 오래된 자줏빛 벽돌집이 들어온다. 동부의 첫 인상이었다.


그리워하던 비를 더 느껴보려고 국도로 천천히 달렸다. 여기는 이제서야 봄이 움튼다. 나지막한 언덕 사이로 낡은 벽돌집이 그림처럼 자리하고, 그리 크지 않은 나무들이 연초록 잎을 달고 곧게 하늘로 향한다. 마치 채도를 달리한 수채화 물감처럼 형용할 수 없는 촉촉한 초록의 세계가 끝도 없이 드리운다. 빛바랬던 감성의 세포들에 새살이 돋듯 잔잔한 흥분감이 풍경 속에 스며들었다.


푸른 들판을 3시간 정도 달려 다다른 ‘버펄로’. 뉴욕주에서 뉴욕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하지만 제조업의 쇠퇴로 디트로이트나 클리블랜드처럼 쇠락해가고 있는 형편이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이 버펄로 시티의 초입에 위치한다. 코로나가 휩쓸고 간 작은 폭포 마을은 마치 개점 휴업 상태인 모습이다. 큰 호텔 안의 레스토랑들도 문을 닫았고, 건물들도 텅텅 비어 있었다. 웅장한 나이아가라 폭포는 큰 관광지라기보다는 마치 산책 코스 정도의 초라함이 안타까웠다. 대다수의 관광객들은 폭포를 가로지르는 캐나다 국경을 넘는다. 수년 전에 다녀온 캐나다 쪽 폭포는 휠씬 거대하고 관광 시설도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 국경을 넘으려면 여권 필수! 나이아가라 강변에 있는 호텔에서 짐을 풀었다. 노을빛에 물드는 놀스 그랜드 아일랜드 브리지가 무척 인상 깊었다. 아무 기대감 없이 찾은 벨라 비스타 레스토랑은 의외로 맛집이었다. 이탈리아 요리의 깊이가 상당했다. 특히 나이아가라강을 바라볼 수 있는 뷰가 매우 여유롭다.


새벽 5시에 다시 길을 떠났다. 무조건 시카고를 좌표로 찍고 해 지기 전에 도착한다는 계획으로 9시간을 달렸다. 오하이오주에 들어서며 중간 지점인 클리블랜드까지는 이리호를 계속 끼고 달린다. 여전히 물의 도시들이다. 클리블랜드 역시 쇠락한 도시의 모습이 역력하다. 길에 보이는 사람들은 흑인이 70% 이상은 되어 보였다. 다운 타운의 플레이하우스 광장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대형 샹들리에도 왠지 쓸쓸해 보였다.


한국의 전형적인 시골 모습과 닮은 인디애나주도 거쳐간다. 아마도 기후가 한국과 비슷하기에 나무 생김새나 풍경이 비슷해 보이는 듯하다. 여러 주를 거치며 지나가다 보면 늘어선 나무들의 수종과 생김새를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환경에 따라 완연히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처음’이라는 설렘은 모든 감흥을 극대화한다. 드디어 도착한 ‘시카고’. 도시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시카고의 다운타운은 정말 흥미로웠다. 건축의 도시답게 다양한 빌딩의 공존이 아름답다. 온갖 형태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유서 깊은 흔적들을 흠뻑 느낄 수 있다. 다운타운을 감싸 흐르는 미시간 호수는 거대한 바다와 같다. 94층 높이의 ‘존 핸콕 센터’에 오르면 그 바다와 빌딩숲의 장관에 소름이 돋는다. 스타벅스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번 여행에서의 스타벅스는 방문기를 따로 쓸 만도 하다. 시카고의 미시건 애비뉴에 위치한 스타벅스 리저브의 규모와 인테리어는 세계 최고. 베이커리와 칵테일바도 화려하게 갖추고, 루프 탑 전망대도 보유한다. 모든 관광객은 다 여기로 모인 듯했다. 그리고 시카고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도로와 보도 사이를 가득 채운 튤립의 향연. 건조한 도시의 풍경을 화사하게 채워주었다. 5월 한가운데에 겨울비 내리고, 저녁으로 때운 따끈한 일본 라면의 국물 맛, 짙게 내린 커피의 향, 코트에 모자까지 눌러쓰고 골목골목 헤집고 다니며 가슴 속에 스미던 밤공기의 추억이 아직도 아련하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아이오와주를 달렸다. 이전까지의 풍경은 목가적인 한적한 시골의 그것이었다면 아이오와는 대단위 곡창지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봄의 시작이다. 거대한 기계로 씨를 뿌리고, 잔디 같은 새싹들이 드넓은 구릉을 이룬다. 농가 옆에는 공장처럼 보이는 시설들이 함께 있다. 농기구 회사들도 많고, 수확철에 몰려드는 바이어들을 위한 시설들도 있다. 거대한 밭 한가운데에는 가축들을 위한 인공적으로 만든 오아시스가 흐른다. 오아시스를 만들어 주는 회사의 광고판이 인상적이다. 아이오와의 젖줄인 미시시피강을 건너며, 잠시 어릴 적 읽었던 허클베리핀의 모험이 떠올랐다. 역사적인 영화들이 차례로 스쳐가며,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어디쯤 있을까…하는 감상적인 상상도 해보았다. 강변으로 RV 공원이 아름답게 자리한다. 이어지는 캔사스주도 비슷한 풍경이지만, 고속도로가 잘 정비돼 있고, 주행 코스도 매우 아름답다. 초원과 더불어 아담한 숲도 계속 펼쳐진다. 시간을 당기기 위해 캔사스시티를 지나 ‘토피카’라는 작은 도시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이 곳이 캔사스주의 주도라서 규모는 작지만, 유서 깊은 도시이다.


덴버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광활한 들녘이다. 끝이 어딘 지는 묘연하다. 아직 옥수수를 베어낸 자국들만 무성했다. 콜로라도주는 덴버를 기점으로 광야와 알프스로 나뉜다. 광야를 거쳐 들어가면 서부 방면으로 나올 때는 로키산맥의 정기로 가득하다.


덴버 시티는 생각했던 것보다 아기자기하고 깨끗하다. 큰 쇼핑몰에 들렀을 때 지나는 이들의 80%는 거의 백인이었다. 시카고의 자라(ZARA)에는 주로 무채색 계열의 옷들로 채워져 있는데, 덴버의 자라에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밝은 색채의 옷들로 가득하다. 도시를 지날 때마다 이런 대표적인 매장들을 눈여겨 보면 대충 그 도시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옛 정취와 현대적 빌딩들이 공존하는 다운타운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의도적으로 디자인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빌딩 사이사이로 하늘과 흰구름이 마치 퍼즐처럼 등장하고 빌딩 벽면으로 너울거리는 하늘의 모습은 가히 예술적이다. 가장 메인 도로인 16가에서는 밤마다 수많은 전등 아래 카페 파티가 열린다. 가볍게 저녁을 먹은 후에 이 길을 따라 산책하기 좋다. 낮고 둥근 모양의 가로등이 줄지어 불을 밝히고, 여유롭게 관광객을 태운 마차가 지나간다. 도로 위엔 트램도 지나간다. 다운타운의 정취를 흠뻑 느끼려면 하루쯤 이 곳의 호텔에 묵는 것을 추천한다.


이른 아침 덴버의 공기는 쌀쌀했다. 이제부터 산을 통과하는 70번 프리웨이를 달린다. 에버그린 74번 국도와 만나는 곳에 스타벅스와 맥도널드가 있는데, 간단한 아침과 커피를 준비하기에 분위기 만점. 휴게소라고 하기에는 경관이 매우 수려하다. 사실 여기서 내비게이션을 잘못 작동하는 바람에 들어선 74번 국도는 산타페산을 넘어가는 코스였다. 잘못 들어선 이 길은 인생 로드라고 꼽을 만큼 아름다운 산길이었다. 야생 사슴들이 떼로 아침 풀을 뜯고, 가늘고 곧게 뻗은 전나무와 자작나무의 행렬이 끝도 없다. 이 깊은 산중에도 집을 짓는다. 이 길 끝에서 개울을 따라 만들어진 작은 마을 ‘아이다호 스프링스’를 만나며 바로 70번 주도로로 연결된다. 그 다음부터의 경관은 알프스로 들어섰다고도 할 만큼 어마어마한 설경이 펼쳐진다. 5월이지만 스키장이 운영되고, 산 정상은 하얗게 눈으로 덮여 있다. 그리즐릭 크릭(Grizzly Creek) 휴게소, 베일(Vail), 글렌우드 스프링스(Glenwood Spring)등의 명소를 만날 수 있다. 장엄한 산세와 로키 산맥 특유의 가늘고 곧게 뻗은 침엽수림, 군데군데 놓인 예쁜 집들… 넋을 놓고 바라보게 한다.


콜로라도를 벗어날 즈음 70번 도로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은 로키 산맥이 점점 약화되어 가고 왼쪽에는 유타주 특유의 바위 산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때 나타나는 와일드 화이트 호스(Wild White Horse). 거대하게 펼쳐진 바위산이 마치 백마가 하늘을 나는 듯한 형상이다. 그 다음부터는 콜로라도강을 끼고 달린다. ‘제임스 M 롭 콜로라도 리버 스테이트 파크’ RV 공원이 최적의 장소에 자리한다.


유타의 수려한 경관을 감상하며 달리다 보면 모압으로 가는 191번 국도와 만나는 톰슨 스프링스 휴게소가 나온다. 여기 7-ELEVEN에서 컵라면을 구입하여 절경을 바라보며 먹는 맛이 그만이다. 7-ELEVEN지점 어디나 한국 컵라면이 구비돼 있다. 70번 프리웨이는 15번과 만나면서 라스베이거스까지는 3시간 정도의 거리. 이쯤 되면 여행의 피곤이 밀려오며 마라톤 경주의 결승선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갈 길을 더디게 한다. 베가스는 이미 여름의 문턱이었다.


4박5일을 통해 뉴욕주- 인디애나주- 일리노이주- 아이오와주- 캔사스주- 콜로라도주- 유타주- 애리조나주- 네바다주 등 9개 주를 관통하며 대장정의 대륙 횡단을 빠듯하게 마무리하게 된다. 굳이 인터넷 자료를 뒤지지 않더라도, 주마다의 특색이 완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약간의 관찰력만 가지고도 여행 포인트를 찾아낼 수 있다. 짧은 시간 안에 맛보는 미국의 겨울, 봄 그리고 여름… 세계의 땅을 다 밟아본 듯한 느낌… 그리고 떠오르는 단어 하나.

‘Amazing America!~~’


글 _ 제이스 이




<사진 설명>

  1. 나이아가라 폭포 마을

  2. 나이아가라 강변의 노을

  3. 클리블랜드 플레이하우스 광장

  4. 시카고 튤립 거리

  5. 존 핸콕 센터에서 바라본 미시간 호수 전경

  6. 아이오와주 곡창지대

  7. 캔사스주의 농가와 푸르른 들판

  8. 덴버 16번가 카페 거리

  9. 덴버- 더 다니엘 & 피셔 타워의 야경

  10. 관광객을 위한 16스트리트 몰

  11. 산타페 마운틴 리틀 베어 크릭

  12. 상동

  13. 조지타운 샤또 샤머니(Chateau Chamonix) 호텔

  14. 로키산맥

  15. 웰컴 유타주 사인

  16. 와일드 화이트 호스(Wild White Ho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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