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달랐다…그의 얼굴은. 2m 앞에 있는 얼굴로 카메라의 피사체에 담긴 얼굴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셔터를 눌렀다. 앵글 밖의 모습은 늘씬하고 큰 키에 깔끔한 헤어 스타일, 그리고 얼굴은 하얗고 매끈했다. 누가 봐도 약간 성숙한(?) 미소년 같은 얼굴이었다.
그런데 화면에 비친 얼굴은 눈매는 날카롭고, 웃지 않으면 너무 딱딱하고 거기다가 실제보다 훨씬 연륜이 묻어나는 그런 얼굴이었다. 이제 서른을 갓 넘긴 청년이. 실례가 되는 말이지만 사진을 찍으며 솔직한 속내를 그대로 내비쳤다. 그는 웃으며 “그럴 거에요… 하하하” 웃으며 흔쾌히 수긍했다.
안토니오 천, 한국 이름 천경훈. 차이나 타운에 소재한 ‘J 가라오케’ 매니저.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솔직하고 당당했다. 한국에서 명지대 체육학과를 다니다가 베가스에 사는 누나를 방문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미국에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먼저 국방의 의무를 마치기 위해 공수부대에 지원했고, 제대 후 아르바이트로 여비를 모았다. “딱 200만원 들고 바다를 건너왔어요. 부모님께 폐를 끼치지 않고 자립하기 위해 닥치는대로 일했죠. 악덕업주에게 이용을 당하기도 했고, 고생도 무척 했어요. 맥도널드 1달러짜리 햄버거로 석 달을 버티기도 했어요. 그래도 미국에 온 것을 후회해 본 적은 없죠. 그렇게 고생해서 제 얼굴이 그렇게 보이나봐요. 하하” 참 긍정정이다.
돈 몇 푼 들고 미국에 왔다는 흔한(?) 경험담은 올드 타이머들에게서나 들을 법한데, 젊은 사람이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요즘 같이 고생 모르는 젊은이들이 많은 세상에선. 하지만 유학생 신분으로 베가스에 들어온 상당수의 학생들은 생활고부터 신분 문제까지 애타는 맘고생이 적지 않다. 그래서 안토니오의 생생한 스토리는 아마도 남의 얘기는 아니리라.
어려웠던 안토니오에게 그래도 기술이 되어준 것은 바로 칵테일 만들기. 짱가 스시에서 서버로 일하며 칵테일 기술을 배운 것이 오늘의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순발력이 뛰어난 성격이라 다양한 맛을 만들어내는 칵테일이 너무 좋았다고 한다. “그 기술로 J 가라오케에서 7년 동안 일하게 되었고, 처음엔 돈을 악착같이 벌기 위해 주 6일 72시간을 일했어요. 낮에는 코스코폴리탄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밤에는 새벽5시까지 가라오케에서 일했죠. 쉬는 시간이라고는 오직 축구하는 시간이었어요. 그래도 그 때가 가장 행복했죠.”
마약이나 겜블링에도 전혀 손을 대본 적이 없다는 그. 늘 술 마시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직업 치고는 너무도 건전하다. 충분히 자산도 모았기에 사치도 할 법하지만, 단지 취미라고는 신발과 악세서리 모으기. 신을 수집하는 이유도 참 순박하다. 한국에서 나이키가 너무 비싸서 잘 신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1970년대생과 인터뷰하는 느낌이랄까. 이 청년은 새마을 운동 시대에서 왔는가… 하는 생각이 들며 웃음으로 맞장구쳤다.
왜 이름이 남미식의 ‘안토니오’냐고 물었다. “여기서 학교 다닐 때 주로 남미 친구들과 어울렸어요. 그래서 스페니시와 포루투기니도 잘해요. 남미 친구 따라서 브라질도 방문했었죠. 오히려 한국은 10년이 넘도록 한 번도 안 갔어요. 제가 고생을 해서 그런지 외국 친구들이 더 편하더라고요. 덕분에 언어도 배우고 일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 청년 참 알짜배기다. 쓸데없는 ‘짓’을 안 하는 젊은이라니…참. 이야기를 들어볼수록 숨어 있던 따뜻함이 날카로운 눈빛을 녹인다.
왜 인터뷰가 하고 싶었냐고 물었다. “나를 말하고 싶었어요. 누가 나에게 나의 삶을 물어봐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냥 스쳐 지나갈 뿐이죠.”… ‘외로웠구나’… 갑자기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한 청년이 맨땅에서 자신의 역사를 쓰기 위해 얼마나 고단했으면, 겉으로는 밝고 화창해도 그동안 외면했던 마음 속 깊이 흐르는 외로움을 낯선 이 앞에서 말하고 싶었을까. 아니 모르는 이였기에 더 시원하게 쏟아내지 않았을까. 우리들의 신은 우리가 이렇게 솔직한 입을 가졌을 때 가장 사랑하고 싶지 않을까.
청년 ‘안토니오’는 사람은 끝까지 겸손해야 한다고 말한다. 돈을 많이 벌면 쉽게 변하는 게 싫다고 한다.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내가 처음 서 있던 자리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라고 의젓하게 말한다.
왜 이렇게까지 노력하며 사냐는 어리석은 질문에 “제 이름이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그 사람은 틀림없다는 인정을 받고 싶어요.” 성실한 그는 머지않은 날에 오너가 될 것이다. 시민권을 따면 부모님도 모셔오고 원하는 그림 같은 집도 곧 사게 될 것이다. 소망하던 자서전도 쓸 것이다.
그리고 예쁘게 성취된 한 청년의 성공담이 들려올 때,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던 낯선 1인은 축복의 카드를 전하고 싶을 것 같다.
글_제이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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